신청했던 음악을 다 듣고 나서 나는 잠시 휴게실로 나와 담배를 피워 물었다.한 모금을 깊이 들이 쉬고 나서 휴게실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오늘은 어디서 무엇을 해야 하나를 고민하려고 하는 차에 음악실에서 음악을 걸어 놓던 친구가 내 앞에 다가와 있는 것을 알았다. "차 한 잔 같이 해도 될까요?" 이 질문에 나는 내심, '아, 또 내가 귀찮게 한 모양이구나..이런...' 등등의 생각과 어떻게 대응을 할까를 고민하면서 일단은 자리를 권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내 예상과는 전혀 딴 판이었다. 나보다 한살이 많은 그는 내게 말을 틀 것을 제의했고, 그 날 저녁 우리는 근처 인사동의 포장마차에 들러 없는 주머니 먼지까지 털어 소주를 깠다.
그 해 겨울은 유난히도 추웠고, 거리로 내 몰린 내가 갈 곳이 없었을 때, 내가 선택할 수 있었던 유일한 행선지는 그 친구가 기거하던 감상실의 다락방이었다. 숱한 밤이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를 안주로 곁들인 소주와 함께 불기 없는 다락방을 훑고 지나갔다. 아침이면 주인 아주머니에게 들키기 전에 서둘러 도망을 나와서 어딘가를 배회하다가 적당한 시간이 되면 다시 들어가 감상실 소파에 몸을 뭍은 채로 고달픈 청춘을 흘려 보냈다. 어느 날, 그 많던 음반들이 덕수궁으로 실려 가기 위해서 학생들의 손에 의해 분류되고 정리되는 것을 보는 것으로 그나마 있던 우리의 보금자리는 영원히 사라졌다. 음악 잡지 등에 손바닥보다 더 작은 분량의 활자들이 "유서깊은" 문화 공간 하나가 우리 곁을 떠났음을 알려 주었고, 우리의 밤은 더욱 더 많은 소주를 요구했다.
시간은 흐르고, 모든 것은 조금씩 변해갔다. 인사동에 노을의 노래라는 뜻을 가진 '하가'라는 카페가 우리의 새로운 아지트가 되고, 밤이면 밤마다 거기서 시작된 우리의 아픔으로 풍요로운 축제는 근처의 포장마차에서 끝이 나곤 했다.
어느 날인가는, 나때문에 주인 아주머니께서 베토벤의 현악 사중주 15번을 마지 못해 틀어 주셨다. 사실은 내가 가지고 있던 아마데우스 사중주단의 후기사중주 전집을 가져다 놓은 것이었다. 분위기를 착 가라 앉혀 버리는, 웬만한 애호가가 아니면 피곤한 음악을 트는 것을, 그것도 손님 많은 저녁 시간대에 트는 것을 주인 아주머니께서 좋아하실 리가 없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이다. 베토벤의 현악 사중주 15번이 흐르는 가운데 우리는 맥주잔을 들고서 떠들고 있었다. 사실은 내가 떠들었다. 그 때 그 친구가 말했다. "야, 이럴 땐 그냥 조용히 눈 감고 듣는 거야." 무언가 알지 못할 빛줄기가 한 차례 온 몸을 관통하며 지나간 그 순간 흐르던 것은 2악장의 트리오 부분이었다. 그 순간과 그 때 그 친구가 한 말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기쁜 우리 젊은 날은 우리의 큰 형님(베토벤) 작은 형님(슈베르트)들과 함께 그렇게 흘러 갔다...
어느 날인가는, 나때문에 주인 아주머니께서 베토벤의 현악 사중주 15번을 마지 못해 틀어 주셨다. 사실은 내가 가지고 있던 아마데우스 사중주단의 후기사중주 전집을 가져다 놓은 것이었다. 분위기를 착 가라 앉혀 버리는, 웬만한 애호가가 아니면 피곤한 음악을 트는 것을, 그것도 손님 많은 저녁 시간대에 트는 것을 주인 아주머니께서 좋아하실 리가 없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이다. 베토벤의 현악 사중주 15번이 흐르는 가운데 우리는 맥주잔을 들고서 떠들고 있었다. 사실은 내가 떠들었다. 그 때 그 친구가 말했다. "야, 이럴 땐 그냥 조용히 눈 감고 듣는 거야." 무언가 알지 못할 빛줄기가 한 차례 온 몸을 관통하며 지나간 그 순간 흐르던 것은 2악장의 트리오 부분이었다. 그 순간과 그 때 그 친구가 한 말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기쁜 우리 젊은 날은 우리의 큰 형님(베토벤) 작은 형님(슈베르트)들과 함께 그렇게 흘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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