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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ppenwolf

네번째 동방박사의 이야기

by Amadeus 2008. 10. 22.
해마다 크리스마스 때면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해 겨울 서울로 올라오는 밤 열차 안에서 읽을려고 들고 탄 리더스 다이제스트의 말미에 이달의 다이제스트라고 소개되는, 그 잡지에서는 가장 긴 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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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번째 동방박사

성서에는 아기 예수의 탄생을 맞이하여 세 사람의 박사가 별들의 인도를 받고 황금과 유향, 몰약을 바친 것으로 나옵니다. 그 이야기는 이들 세 사람의 박사가 성스러운 별의 계시를 받고서 예수님을 경배하기 위하여 고향을 떠나는 부분부터 시작합니다.

  이 이야기에 따르면 그들 박사는 일행이 세사람이 아니라, 본디 네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네번째 박사는 주님을 경배하기 위하여 가장 부드러운 아마포와, 자신이 구할 수 있는 갖가지 보석 등을 준비해서 떠납니다. 그러나 그 준비가 늦어서 일단 다른 세사람의 일행으로부터 여정에 쳐지게 되지요.
 
 
  중간 어디에선가 그들의 일행에 합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길을 재촉하지만, 길을 떠난 지 며칠 되지 않아서 홀로 출산의 고통을 겪고 있는 산모를 만납니다. 그녀를 돕다 보니 또 시간이 지체되지요. 새로 태어난 아기에게 옷이며 여러가지가 필요했지만 가난한 산모는 그런 것을 마련할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 박사는 이렇게 생각하지요. "준비한 다른 것들로서 주님을 경배하자, 조금 부족하긴 하지만 그 정도는 용서해 주실 것이다."   이렇게 산모와 아이를 위해 며칠을 보낸 박사는 또다시 길을 재촉하지만, 가는 도중에 갖가지 비슷한 일들을 겪게 됩니다. 그러면서 가지고 있던 온갖 진귀한 보석들조차 그 본래의 임자를 만나지 못한 채 하나 둘씩 없어져 나가고,끝내 이 박사는 빈털터리가 되고야 맙니다. 하지만 구세주를 경배하겠다는 신심과 열망에 이끌려 오랜 시간이 지체된 후에 마침내 별이 가리키던 곳 근처에 당도하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그를 기다리는 것은 그가 그토록 뵙고자 하던 아기 예수가 아니라, 병든 가족들을 뒤로 하고서 빚에 몰려 갤리선(노예들이 노를 젓는 배의 일종)으로 끌려 가는 어떤 남자와 그 가족들이었습니다. 가여운 이 박사는 이 사람 대신 노예선으로 끌려 갑니다. 그 남자가 끌려 가고 나면 남아 있는 가족들을 병고와 가난으로부터 보호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지요.
 
  그렇게 해서 노예선에서 짐승과도 같이 혹사를 당하는 삼십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마침내 배는 떠났던 곳으로 되돌아오고, 하나의 열망을 향한 기나 긴 여정도 끝나, 지치고 병든 몸으로 다시 찾아 헤멘 끝에 그는 자신이 찾던 바로 그 분이 예루살렘에 계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십자가에 못박혀 사형을 받을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사력을 다한 끝에 그는 십자가에서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그 분을 뵙게 됩니다.
 
  그는 엎어져 울면서 부르짖습니다. "주여, 저는 당신을 위하여 황금도 몰약도, 유향도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오로지 가진 것은 이 지치고 병든 몸이나 제 경배를 받아 주소서." 그리고...하늘에서는 이에 한 줄기 한 없이 부드러운 목소리 하나가 그의 지친 영혼과 육신을 감싸 안습니다.
 
 
 "네 이웃 가운데 가장 미천한 자 하나에게 베푼 것이 곧 내게 베푼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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