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체르토나 콘체르토 그로소가 그 기원은 당시에 있었던 2개의 주요한 형식을 이어받아 '콘체르토 다 키에자'와 '콘체르토 다 카메라'의 형식을 취한 것은 앞에서 언급하였다. 이윽고 콘체르토는 빠르게-느리게-빠르게의 3악장 형식과, 양 �의 빠른 악장에서 리토르넬로 형식이라는 족자적 형식을 취하게 되고, 이 양식이 그 때까지의 콘체르토의 악기 편성을 넘어 실내악이나 독주곡의 영영역까지 진출한 것도 이미 알아 보았다. 이처럼 어느 시대에서 우월한 형식이나 양식은 원래의 장르에서 벗어나 다른 장르를 잠식하기도 하고, 그것을 자기 속에 포섭하기도 하는데, 1760년경까지에 점차 완성되어가고 있던 소나타 형식은 점점 '콘체르토'의 영역에 침입하기 시작하여, 마침내 그 제 1악장을 소나타 형식의 주형으로 고쳐 만들려 하기에 이르렀다.
여기서 J. S. 바흐 이후 고전파로의 이행기에 관하여 자세한 설명은 하기 어렵지만, 이를테면 후기 만하임 악파의 카나비히와 칼 슈타미츠, 빈의 디터스도르프, 또한 복케리니 등의 우아하고 다감한 전고전파의 여러 작품들은 이미 2개의 주제를 가진 소나타 형식의 성격을 보이고 있다.그리고 엠마누엘 바흐의 여러 가지 종류의 콘체르토는 형식이나 동기적 전개의 관점에서 중요하며, 또 그는 이미 함마클라빌(근대적인 피아노)을 위한 콘체르토를 썼다. 그의 작품은 크리스챤 바흐의 그것과 함께 모짜르트의 콘체르토에 크게 영향을 끼쳤다.
그런데, 형식면에서 고전파로부터 낭만파에 걸쳐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은, 앞에서말한 소나타 형식의 영향이지만(그래서 독일에서는 '조나텐 콘체르토Sonaten Konzerto'라고도 불린다), 대개의 경우 제 1 악장에 두 개의 제시부가 존재하는 점이다. 그리고 그 전반은 보통 오케스트라의 투티에만 의존하고 있으며, 두 개의 주제는 동일한 조성으로 제시된다(이를테면 교향곡에서는 서로 다른 조성으로 제시된다). 그것이 끝나면, 흔히 솔로가 제 1 주제와 관계 없는 패시지로 들어오고, 그 후에 정말 소나타적인 제시부(제 2 주제 이하의 조성을 달리한다)가 온다. 이 현상은, 콘체르토에서의 대립의 긴장은 제 1 주제와 제 2 주제 사이에 있기보다는 오히려 여전히 투티와 솔로 사이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말하자면 바로크의 리토르텔로 형식이 소나타 형식 속에 부리깊게 남아있는 결과이다(특히 제시부와 전개부에서 현저하다).
이런 점에서, 고전파, 낭만파의 콘체르토를 억지로 소나타 형식의 도식에 맞추지 말고, 그 자체의 형식으로서 이해하도록 권하고 있는 연구자도 있다. 한 편, 멘델스존의 유명한 바이올린 협주곡처럼 단일한 제시부를 가진 작품도 적지 않다.
제 2 악장은 바로크 시대의 느린 악장들보다 한층 가요적이고 표정적인 것으로 발전하고, 마지막 악장을 바로크 시대의 리토르넬로 형식이 발전된 것인 론도 형식 또는 론도 소나타 형식을 가지게 되었다. 거기서는 종종 민요풍의 주제가 사용된다(모짜르트의 바이올린 협주곡 5번 등, 그러나 콘체르토로의 민요의 도입은 고전파 이전인 1735년으로 소급된다). 또 3악장제는 토렐리 이래의 전통이 지켜져(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2번과 같은 예외도 있다), 4악장제의 심포니와 뚜렸한 대비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또 고전파, 낭만파 시대는 콘체르토라고 하는 장르가 가지는 특수한 성격을 드러낸 시대이기도 했다. 예컨대 바이올린 협주곡의 분양에서, 비오티, 크로이쩌, 로드 등의 작품에 대한 높은 평가와 이들이 누린 영광은 같은 음악 내용의 다른 장르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요컨대, 콘체르토는 비르투오소가 담당하게 된 것이다. 또 이 3인이 완성한 프랑스파의 주법에 의한 바이올린 콘체르토의 형식을 베에토벤이 그의 D장조의 명작(작품 61)에서 얼마나 충실히 모사하고 있는지를 보면 실로 놀랍다. 주요한 테마나 패시지에서 그의 작품을 거의 그대로 옮긴 대목은 2, 3에 그치지 않는다. 이것은 베에토벤에게 평생에 한 번의 경험이었을 것이다.
이와 같은 바이올린 연주의 특수성에 대한 강한 의존은 브라암스의 D장조 협주곡(작품 77)이 요아힘의 협력 아래 겨우 이루어졌었다는 사실에도 나타나 있다. 피아노 협주곡에서는 이와 같은 일을 볼 수 없으나, 19세기를 통하여 기교주의의 무내용한 작품이 열렬한 박수를 받은 점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19세기의 콘체르토의 역사는 아류 작품의 역사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또한 고전파, 낭만파를 통하여, 솔로 콘체르토의 양식을 유지하면서 2개 또는 3개의 독주악기를 가진 작품을 몇 개 볼 수 있으나, 이것들을 이전의 콘체르토 그로소의 정신의 부활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하이든이나 모짜르트의 4개의 독주악기(관 포함)의 '생포니 콩세르탄트'는 약간 바로크풍이지만, 같은 모짜르트라도 플루트와 하아프를 위한 곡,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위한 곡, 베에토벤의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를 위한 3중 협주곡, 브라암스의 바이올린, 첼로를 위한 2중 협주곡 등은 전적으로 조나텐 콘체르토라고 하지 않으면 안된다.
한편, 19세기의 관현악곡에서 커다란 분야를 차지하는 교향시의 스타일과 형식 또한 콘체르토에 영향을 미쳤다. 가장 빠른 예의 하나는 베버의 '콘체르트 슈틱'(f단조, Op. 79)로, 이것은 연속된 몇 개의 부분(모두 악장이라고 하기에는 짧고 불완전하다)으로 이루어진 곡이지만, 그의 제자 베네딕트에 의하여 어떤 표제(프로그램)가 전해져 있다. 리스트의 '죽음의 무도'는 말할 것도 없지만, 그 두 개의 피아노 협주곡의 형식 또한 명백히 그이 교향시의 형식(이를테면 탓소 등)을 답습하고 있다. 리스트는 베버가 한 것처럼 몇 개의 부분을 단순히 연속시키는 것이 아니라, 주제를 각 부분에 씀으로써 전체를 확대된 1악장 형식으로 하여 통일을 도모했다. 리스트의 이 방식은 생상스, 델리어스, 엘거 등에 의하여 이어받아지고 있다. 프랑크의 교향시 '진',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변주곡 형식의 교향시 '돈 키오테'에서는, 전자는 피아노, 후자는 첼로를 솔로 악기로 하는 사실상의 콘체르토인데, 그러나 관현악과의 연결은 매우 강하여, 관현악의 제 1악기, 혹은 주된 악기라는 관점을 나타내기도 한다. 이종류의 작례는 19세기 말엽부터 20세기 초엽에 걸쳐 매우 많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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