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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ethoven

베토벤의 현악 사중주 개관

by Amadeus 2008. 10. 15.
 

Ludwig van Beethoven

베토벤의 현악 사중주 개관

 

 

 



베토벤은 충분한 숙고를 하기 전에는 현악 사중주의 장르를 시작하지 않았다. 1795년에 Apponyi 백작이 그에게 두 곡의 사중주를 써달라고 위촉했으며, 작품 3의 현악 삼중주와 작품 4의 현악 오중주 두 곡의 현악 앙상블을 위한 작품들은 이 위촉의 결과물로 1796년에 작곡되었다.이 가운데 바이올린, 비올라, 그리고 첼로를 위해 내림 마 장조로 작곡된 삼중주의 안단테 악장으로부터 작품 18-4 현악 사중주의 느린 악장의 구도의 흔적을 찾을 수도 있다. 오중주에 관해서 이야기하자면, 이 역시 내림 마 장조로 쓰여졌는데, Minuetto quasi allegretto 로 쓰여진 삼악장은 폰 렌쯔(von Lenz)가 언급한 것처럼 새로운 어법(idiom)인 스케르쪼로 주목된다 (W. von Lenz, 베토벤과 세가지 양식, 1909년 초판 p. 342. 베토벤의 유작 가운데 두개의 클라리넷, 두개의 오보에, 두개의 바순, 그리고 두개의 혼(Ataria)을 위한 8중주는 몇몇 세부를 제외하고는 작품 4의 오중주와 동일하다. 이 두 곡 가운데 어느 곡이 먼저 작곡된 것인가에 대해서는 같은 책의 p. 449를 보라).

 

그러나 이들 첫번째 실내악 작품들에 그리 큰 비중을 두기 보다는, 아마도 1798년에 작곡된 작품 8의 세레나데와 역시 같은 해에 작곡된 작품 9의 세 곡의 삼중주들이 특히 베토벤의 작곡가로서의 행로에 이정표라 할 수 있다. 어떤 비평가- T. Helm -는 이들을 작품 18의 현악 사중주들보다 더 높이 평가했는데, 이들 삼중주 가운데 다 단조로 쓰여진 세번째 곡을 들으면 이 의견에 동조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시작부터 끝까지, 이 작품은 내재된 사상의 고결함으로 두드러진다: 알레그로 악장의 제 1 주제는 베토벤의 손끝에서 나온 모든 음악 가운데서도 가장 위대한 영감의 하나이며, 6/8 박자의 스케르쪼는 오직 작품 59의 거대한 스케르쪼만이 그에 필적한다.

 

이 삼중주는 이후 베토벤이 사중주의 형식을 발전시켜 나갈 행로를 작품 18의 사중주들보다 훨씬 더 잘 예견하게 한다.

 


 

베토벤의 사중주의 발전은 작곡가의 생의 후반기인 1800년부터 1826년 사이에 걸쳐 작곡된 일련의 16곡의 작품들을 통해 점차 이루어졌다 (실제로 오직 16곡의 완결된 사중주만이 존재하는데, 왜냐하면, 곧 이어 보게 되는 바와 같이, 종종 17번 사중주로 간주되는 작품 133의 대푸가는 단지 13번 사중주의 원래의 종곡일 따름이기 때문이다).

 

W. von Lenz는 그의 유명한 저서 베토벤과 세가지 양식(Beethoven et trois styles)에서 베토벤의 창조적 작업을 세개의 서로 다른 기간으로 구분한다 : 그 첫째는 모방의 시기이고, 두번째 시기에서는 진보적 형식의 자유를 통해 그 안에서 기존의 형식이 재창조되는 단계이며, 이는 곧 세번째 시기로 이어지는데 여기서는 새로운 형식들이 그의 상상력에 가득찬 생명력에 의해 창안되고 조형된다.

 

그의 작품들을 이러한 양식적 시기별로 나누는 것은 특히 현악 사중주를 다루는 데 편리함을 제공하기 때문에 대체로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는 편이다. 그러나, 정신적인 면에서나 미학적인 관점 두가지 모두를 고려하여 생각할 때, 베토벤의 예술적 창조의 삶을 단지 두개의 단계로 나누는 관점도 있으며, 리스트(Liszt)의 견해도 이를 뒷받침한다. (프란쯔 리스트의 서간들[Franz Liszt's Briefe], La Mara 발행, Leipzig Breitkopf 출판사, 1권 P. 124. 아래를 보라; Chap II, p. 184, note I)

 

이는 von Lenz가 구분한 세가지 시기 가운데 두번째는 비록 괄목할만하다 할지라도 첫번째 시기의 양식의 확대라는 생각이다. 모든 예술가들의 발전에 필수 불가결한 첫번째의 순수한 모방의 시기가 주로 주목을 받는 이유는 베토벤이 그 자신이 보는 관점에서 전통 예술의 기법을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그 시기 고유의 가치는 그 내부를 들여다 보면 한 눈에 보이는 작곡가의 내재된 인격에 있다. 작품 9의 3번 삼중주나 작품 18의 4번과 6번 사중주의 몇몇 부분들, 작품 10-2 소나타의 allegretto 악장, 작품 13의 소나타, 그리고 작품 22의 소나타 등 일부의 보기를 제외하면, 약 1802년 경에 끝나는 베토벤의 초기 양식의 작품들의 대다수는 일반적으로 그 앞시대의 하이든이나 모짜르트같은 작곡가의 최고의 작품에 비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이 생각에 따르면, 베토벤의 초기의 두 시기에는 하나의 내재된 동기가 있다는 사실이 명백해진다. 이 창작 시기에 포함되는 작품들로는 위에 언급된 보기들을 통해 예견되는, 인격적 개성을 드러내는 많은 다른 작품들 가운데서도, 교향곡 3 - 8번, 현악 사중주 작품 59, 작품 74, 작품 95(마지막 시기의 양식이 두드러지는 과도기의 작품), 작품 97의 내림 마장조의 삼중주, 피아노 소나타 작품 26에서 작품 90까지, 작품 30의 1번에서 3번까지의 바이올린 소나타, 그리고 작품 47과 96의 바이올린 소나타 등을 들 수 있다.

 

이 작품들의 작곡 시기는 대략 1817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다음의 특징들이 두드러진다.

 

  • (a) 작품의 본질적 사상은 객관적이고 외면적이다. 여기서는 전통적 양식이 답습되며, 드문 예외를 제외하면 베토벤의 내부의 상상력으로 충만한 삶은 영감의 직접적 동기가 아니다. 말하자면, 작곡가는 여전히 한 발 떨어져 있다. 그리고 비록 그의 인격적 개성이 그의 예술 속에서 솟아 나는 정서를 촉발하였다 하더라도, 그것은 여전히 그의 예술의 유일한 목적이나 기능으로 자리매김하지 않는다. 그는 아예 자신을 표현하지 않거나, 하더라도 거의 미미한 정도이다. 그는 그가 삶 그 자체와 그리고 외부의 세계로부터 받는 인상들을 그저 기록할 따름이다. 작품 59의 사중주들은 J. de Marliave가 예리하게 지적하듯이 이러한 객관적 예술의 극점을 이룬다.
  • (b) 이 시기의 작품의 형식은 주로 전통적인 양식이며, 그것이 자유롭게 확대된 것이다. 이러한 확대는, 우리 시대가 생각하기에는 별 것 아니지만, 당시에는 Fuchs와 Albrechtsberger의 아카데미즘에 정면으로 맞서는 무법적인 반란으로 간주된 일련의 기술적 어법들을 통해 명백하게 드러난다.

    이러한 기술적인 특징과 그 보기는 다음과 같다:

    • 첫번째 알레그로 악장에서, 보통 끝까지 유지되는 2박자의 사용: 다 단조의 교향곡과 전원 교향곡
    • 반복되는 안단테 대신 베토벤의 새로운 형식으로서의 알레그레토의 대체(작품 95의 사중주)
    • 미뉴엣을 스케르쪼로 대체 : 이는 베토벤 예술의 본질적 요소 가운데 하나이다.
    • 조성 관계의 고전적 법칙 무시
    • 전통적인 리듬관계의 무시, 등등

 

이들의 결과로 나온 형식은 무한히 유연한 조형으로서 베토벤의 거대한 서정적 역량을 수용하기에 특별히 적합하며, 또한 그것은 솟구쳐 나오는 격렬함, 극명한 대조, 그리고 멜랑콜리의 안개로 모호하게 감춘 광란적인 기쁨 등의 창조물로서 그의 음악적 상상력의 정수를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기질에 대해, 정확한 조성과 절제된 삼박자로 작곡해야 하는 트리오를 가진 모짜르트의 형식보다 더 구속적인 것을 상상하기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점들이 눈에 들어온다 (Von Lenz, 위의 책 p. 63)

:

  • 가 장조의 7번 교향곡에서 스케르쪼의 세번째 부분은 라 장조로 작곡되었다.
  • 작품 74의 현악 사중주에서 스케르쪼 악장은 다른 악장들에 대해 상궤를 벗어나는 비율을 차지하고 있으며 더 길다.
  • 다 단조 교향곡에서 이박자와 삼박자가 결합된 리듬
  • 영웅 교향곡의 스케르쪼에서 에피소드에 겹박자를 도입
  • 스케르쪼 전체가 이러한 리듬으로 쓰여진 작품 31의 3번 소나타
  • 마지막 시기(피아노 소나타 작품 110, 현악 사중주 작품 127, 작품 132, 교향곡 9번의 스케르쪼에서 4박자의 에피소드)에서 넘쳐나는 모든 자유로운 기법들

 

마지막으로, Von Lenz가 언급하듯이, 이 시기에는 심지어 소나타 형식까지도 수정을 당하게 된다. 이미 중단 없이 이어지는 전개부의 기법이 나타나는데, 그것은 마지막 시기(작품 90)을 특징짓는다. 느린 악장은 길고 단절이 없는 멜로디들(작품 59의 1번, 2번)로 바뀌어 마지막 악장으로 이어진다(작품 59의 1번 사중주). 그런가 하면 종악장은 전체 작품의 응축된 정수를 포함하게 된다.

 

요약하면, 하나의 연속적인 전체로 고찰했을 때, 그의 전반기 반생의 창조적 작업에 의해, 베토 벤은여전히 하이든과 모짜르트의 고전적 전통에 얽매여 있었다. 그러나 형식과 내용 모두에서 두드러진 변화와 그의 후반기가 채워질 새로운 예술의 창조의 징후가 도처에서 발견된다.

 


 

이러한 새로운 경향들이 결정화되기 시작한 시기는 대략 1818년 경이다. 두번째 시기(Von Lenz의 분류에 따르면 세번째 시기)의 양식을 특징짓는 작품들은 다음과 같다 :

 

  • 1818년에서 1822년 사이에 작곡된, 작품 101, 28번부터 작품 111, 32번까지의 피아노 소나타들
  • 1818년에 작곡된 두 곡의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들
  • 1822년에 완성된 작품 123의 장엄미사, 라 장조
  • 1822년에 작곡된 작품 124의 서곡, 다 장조
  • 1822년에 완성된 작품 125의 합창 교향곡
  • 1825년에서 1827년 사이에 작곡된 작품 127, 12번부터 작품 135, 16번까지의 현악 사중주들

 

Von Lenz는 다음과 같은 주석을 달았다 : '베토벤의 세번째 시기는 괴테의 파우스트의 2부에 비견될 수 있을 것이다 (Von Lenz, 위의 책 p.259). 이제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순수한 개인적 형식으로 표현되는 사상은 항상 복잡하다; 그들은 물질적 존재의 경계들 밖에서 그 자신의 고유의 세계에 사는 정신의 자기 현시이다. 작곡자는 완전히 귀가 멀어 외부로부터의 인상으로부터 완벽히 고립되었기 때문에 인간 본성이나 세계를 더 이상 있는 그대로 표현하려고 시도하지 않았다. 대신 그들이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자신의 이상으로서 표현하였다.... 유례 없이 강열한 내적 집중의 소산으로서의 베토벤의 세번째 양식에서 더 이상 처음 두 시기의 신선함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것은 진실을 오롯이 움켜쥔 한 천재의 현시로서 항상 흥미를 끌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비록 우리들 자신과 같은 상상력의 영역에서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베토벤의 영감은 넘쳐 나서 우리가 의식하는 한계들 너머로 흘러간다.... 항상 천재의 손길이 닿아 있음이 명백하게 느껴지는, 어느 정도 숙고된 배려가 상상력의 첫번째 충동 대신 들어 앉는다. 이는 젊음에 찬 생명감이 주는 인상을 정교하고도 명상적으로 깊이 음미한 것이다. (Von Lenz, 위의 책 pp. 66 - 7)

 

특별히 이 관점에서 바라볼 때, 이러한 개념의 표현은 다음과 같은 특성들을 포함한다 :

 

  • 흔치 않은 조성(작품 131의 올림 다 단조 사중주)
  • 빈번한 전조(라 장조의 장엄 미사에서 글로리아)
  • 진기한 결합들
  • 그 자체 속으로 침잠하는 듯한 상념들

 

'이 시점부터 계속해서 에피소드들에 대한 관심의 증대는 원래의 주제를 압도한다; 예전의 개념의 명료함은 간 데 없다...이는 예술의 기술적 원천들의 보다 더 복잡한 발전에 자리를 비켜준다. (Von Lenz, 위의 책 p. 63.)

 

특별히 현악 사중주들에 한정해서 말한다면, Ingres에게 헌정된 Sauzay의 논문에서 지적된, 다음과 같은 후기 양식의 여러 특징들이 나타난다 (E. Souzay, Haydn, Mozart, Beethoven, Etudes sur le quatuor, Paris, 1861) :

 

  1. 작품의 구성에서 네 성부 모두가 동등하게 취급되어 관심이 모든 악기들 간에 균등하게 분배된다.
  2. 주제적 발전이 모든 기교적인 면, 즉 화성, 리듬, 박의 분할 등등 모두에서 훨씬 더 확장된다.
  3. 선율적 악구를 해결하기보다는 예비
  4. 유사한 움직임들이 동시에 서로서로 함께 결합되어 이어짐
  5. 많은 셈여림 기호들, 악상 기호들, 설명적 문구들, 작곡가 자신의 상념을 표현하는 다양한 음색을 확실히 하기 위해 작곡자 자신이 기입한 주의들

 

댕디(M. V. Dindy)의 주장 (베토벤의 열일곱 곡의 현악 사중주 분석[Analysis of the seventeen Beethoven quartets], 파리의 스콜라 칸토룸[Schola Cantorum]에서 댕디가 작곡에 관해 연설한 내용을 M. P. Coindreu가 정리한 초록에서 인용[pp. 14 - 16]) 에 따르면 현악 사중주의 형식에서 베토벤이 이룩한 여러 기술적인 혁신들은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

 

I. 악장들의 형식

  • (a) 소나타 형식 : 다섯개의 악장들 가운데, 제 1 주제는 어떤 것도 딸림조 혹은 주 조성의 관계조가 아니다; 세 악장에서는 장 삼도 아래이며, 두 악장은 주 조성의 삼도 위이다.
  • (b) 안단테 : 베토벤은 종종 느린 악장에 소나타 형식을 사용하는데, 이는 피아노 소나타에서는 한 번도 채용하지 않은 수법이다. 그는 결코 두도막 형식의 느린 악장을 사용하지 않았으며, 전개부가 없는 소나타 형식을 단 한 번 사용했다. 한 느린 악장은 하나의 악절로 이루어져 있다.
  • (c) 스케르쪼 : 작품 59-1의 7번 사중주의 스케르쪼는 새로운 형식이며, 이는 7번 교향곡과 9번 교향곡, 그리고 작품 97의 삼중주에서 다시 나타난다.
  • (d) 론도 형식 : 이는 다섯 군데에서 발견되며, 론도가 세 번 혹은 네 번 반복된다.

II. 순환 형식

  1. 선율적 관계 : 이들은 작품이 발전해 가는 단초가 되는 서주의 사용에서 암시된다(14번 사중주).
  2. 화성적 관계 : 조성에 대한 구도는 매우 조심스럽게 구상되었으며 일반적으로 공통 화음의 아르페지오에 바탕을 두고 있다. 처음 나타난 조성에 이어지는 움직임들은 종종 주 조성의 3도 아래이거나 관계조, 혹은 버금 딸림조이다.[I (a) 참조]
    주 조성의 버금딸림조를 사용하는 것은 이렇게 혼란스러운 조성이 다른 움직임들의 효과가 덧쌓임으로써 사라진다는 답변에 의해 정당화된다. 딸림조는 어떤 악장에서도 주 조성이 되지 않는데, 이렇게 함으로서 단조로움을 피할 수 있다.
  3. 리듬적 관계 : 이들은 다양한 형태의 경과적 악장의 창작으로 귀결된다.
    • 소나타 형식의 악장(7번 사중주)
    • 변주곡 형식의 악장(13번 사중주의 Alla danza tedesca)
    • 모음곡 형식의 악장(14번 사중주의 2악장, Alla marcia, 15번 사중주)
    • 트리오를 생략하고 새로운 조성의, 제 2 주제가 아닌 새로운 요소를 도입함으로서 이루어지는 스케르쪼로의 복귀. 세개의 사중주는 경과적 악장을 두개 갖고 있는데, 이들은 각각 13, 14, 15번 사중주이다.

 

느린 악장은 아홉 곡의 사중주에서는 2악장에 배치되며, 다섯 곡에서는 3악장에 배치된다. 세 곡의 사중주는 두 개의 느린 악장을 가지는데, 이들은 6번, 13번, 14번이다. 여러해동안 관심 밖에 있던 론도 형식이 후기의 사중주들에서 다시 나타난다(11번, 15번, 그리고 피아노 소나타 작품 90 참조).

 

기교적 관점에서 볼 때, 후기 사중주들의 기교는 '대 변주곡(grand variation)'이 압도적이다. 이 형식의 장점은 현대의 예술이 표현해야만 하는, 정서의 모든 음영에 적합하다는 점에서 두드러진다. (뱅상 댕디[Vincent d'Indy]의 음악 작곡의 과정[Cours de composition musicale]에서 2권의 1부, 4장 473페이지와 그 이후를 참조)

 

그러나, 모든 것이 표현되었을 때, 형식은 그 자체로서는 거의 중요성을 갖지 못한다 : 모든 형식은 덧없는 것이며, 예술은 영원하다; 따라서 후자를 전자에 너무 밀접하게 결합시키면 간혹 한 시대 전체의 창조적 작업을 깎아 내리는 위험을 안게 된다.

 

비록 대 변주곡 형식이 연속되는 선율의 기초를 형성할 때는 무한히 유연한 형식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간혹 과도하게 정형화된 기교로 귀착된다. 후기 사중주들은 이 두가지 결과 모두에 대한 보기를 제시한다.

 

그의 후기의 작품들에서 나타나는 베토벤의 기교들은 매우 공들인 것이며, 그 음악은 종종 귀보다는 오히려 눈을 위해 쓰여진 것처럼 보인다. 동시대의 비평가들은 그가 사용한 불협화음에 대해 그를 비난했는데, 이는 요즘 사람의 귀에는 결코 거슬리지 않는다. 그러나 작품 133에서 보이는 불협화음의 효과는 또 다른 문제인데, 여기서의 구성은 거칠고 무리가 느껴진다. 사람에 따라서는 작품 59-1, 7번 사중주의 첫번째 알레그로에서 사용한 방식을 선호할 수도 있는데, 그 구조는 자유로운 희유곡(divertimento)이며, 아마도 순수하게 학문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때 베토벤이 도달한 유연한 기교의 가장 높은 경지일 것이다. 새로운 기교적 방법들은 작품 127의 사중주 이전에는 찾아보기 어려우나 그 뒤에 이어지는 작품들에서는 그 수가 점점 증가한다. 작품 130의 13번 사중주에서는 적당한 시기에 지적할 많은 좋은 보기들을 담고 있다. 무엇보다도, 놀랍도록 현대적인 방법으로, 베토벤은 리듬을 완벽하게 숙달된 천재성으로 사용하였다. 그의 모든 작품은 스케르쪼에서 파생된 악장을 포함하고 있는데, 여기서 가장 교묘하게 변화하는 리듬적 효과들을 찾을 수 있다; 여기서 그는 동시대의 러시아와 스페인 악파들의 발전을 예견하게 한다. 그리고 음악에서의 이러한 본질적이고 내재적인 요소는 화성적 혁신을 동반하는 기술적 양식보다 상대적으로 덜 진보적이며 덜 복잡한 기술적 양식에 연결된다.

 


 

한 마디로 말해서, 후기 사중주들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은, 음악적 형식을 사상에 끌어다 맞추는 것, 강렬함, 그리고 상상력이 본질적인 요소를 차지한다는 점 등이다. (주 : 이러한 경향은 작품 131의 올림 다 단조 사중주 3악장에서 그 극점에 달한다)

 

드뷔시는 베에토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적어도 현대적인 의미로 말할 때, 그에게서는 "문학적" 상상력이라고는 한오라기도 찾아볼 수 없다. 그는 음악에 열정적으로 헌신했으며, 음악은 그에게 그의 현실적 생활에서는 그토록 통탄할 정도로 결여된 위안과 기쁨을 제공해주는 유일한 원천이었다. . . 부단한 조심성과 순수하게 음악적인 탐구가 그의 생각을 온통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은 9번 교향곡의 마지막 악장에 쓸 주제가 무려 200가지 이상 다른 형태로 스케치된 그의 어떤 노트북에 의해 증명된다.' (Revue Blanche, 1901년 5월 1일) 이 말은 음악 작품을 소설적인 설명으로 망쳐 놓는 관행, 그리고 자기 자신의 생각을 작곡자의 관념 대신 집어 넣어 어떤 댓가를 치르고서라도 음악에 '줄거리'를 붙이려는 비평가들에 대한 항의로서는 주목할 가치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을 복잡 심오한 작품에 대한 최종적인 비평으로 떠받드는 것은 중대한 오류에 빠질 위험이 있다고 생각된다. 적어도 '문학적 음악가'와 '음악적 탐구'라는 어구들이 의미하는 바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베에토벤은 그가 낭만주의자였다는 한에서는 문학적 음악가였다. 왜냐하면 낭만적이라는 말은 문학적이라는 말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낭만적이라는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만일, 낭만주의에서는 '감성이 이성을 절대적으로 우위에 있다'고 파악한 구르몽의 의견에 동감한다면, 분명 베에토벤의 많은 작품들, 심지어는 그의 후기 양식 이전의 작품들조차, 그가 자신이 밟아 간 정신적 행로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특징들을 드러내며, 그리고 종종 심지어는 그의 진술을 설명하는 듯이도 보인다. . . 예를 들어, 작품 127은 부정할 수 없는 낭만적 성격을 가진 다른 작품을 예견케 하는 것이 명백하다. 바로 슈만의 작품 41의 3번 사중주이다. (주 : 작품 18의 6번 사중주의 마지막 악장, 작품 130의 13번 사중주, 작품 132, 작품 135의 마지막 악장도 살펴 보기 바란다. 작품 130의 스케르쪼는 낭만주의로 가득 차 있다. 같은 경향이 이보단 약한 정도로 나타나는 예는 여러가지 프로그램 음악(programme music), 특히 15번 사중주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 말은 매우 명철한 이해를 요구하는 동시에, 한 두 부분을 제외하고서는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묘사적 음악'의 개념은 배제되어야만 한다. 이러한 상이점을 충분히 인지하지 못해서, 어떤 비평가들은, 이를테면 Helm과 Marx가 11번과 15번 사중주에 대해 저지른 것과 같이 터무니 없는 성격의 구구한 해설들을 갖다 붙이는 오류에 빠지곤 해왔다.)

 

베에토벤의 후기 사중주들에서 드러나는 이러한 감성의 우위는 당시 베에토벤 자신의 정서적 존재가 특별한 환경의 영향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주목할 가치가 있다.

 

무엇보다도, 베에토벤이 작품 127의 사중주와 작품 135의 사중주를 작곡하는 사이에 너무도 빈발한 불행의 위기에 대한 반작용에서 이러한 특성이 명백히 드러난다. 베에토벤에게는 모든 슬픔이 창조적 영감의 산파역할을 하였으며 이러한 창조적 영감은 종종 행복한 영감이 되곤 하였다. 그가 그의 힘을 개선 장군처럼 표현함으로써 대응하는 것은 마치 그의 정서가 고통에 의해 앙양되었다는 듯이 보이며, 어둡고 비참한 시기 뒤에는 언제나 터져 솟구쳐 오르는 에너지가 뒤따랐다. 이러한 절망의 시기, 그가 임종을 앞둔 몇 주 전에 그는 그의 마지막 작품을 작곡하였으며, 활기와 시골 장터의 흥청거림으로 가득찬 작품 130, 13번 사중주의 마지막 악장이 바로 그것이다.

 

다음으로는, 그것은 이러한 정서적 힘의 내밀하고 집중된 깊이 속에서 드러나는데, 이 뒤로는 전반기(베에토벤의 작품 활동을 두 시기로 나누고 있음에 주의 : 역주) 작품들에서 나타나는 빛나는 객관성(예를 들면 작품 59)은 거의 찾아보기 어려우며, 마지막 시기의 기교와 양식에 명백한 영향을 끼친 깊은 과묵함 속에 자신을 감춘다. 이 시기에는 기쁨과 슬픔으로부터 오는 영감이 자연스럽게 솟아 나와 표현되는 일은 예외적인 일이 된다(작품 130, 13번 현악 사중주의 카바티나, 같은 작품의 마지막 악장, 작품 131, 14번 현악 사중주의 마지막 악장); 그 대신에 깊이 삼가하고 절제하는 분위기가 그 자리를 메워서, 오랜 머뭇거림이 있고 난 다음에야 그의 가장 깊은 내면의 정서가 나타나는 점이 많은 작품들에서 두드러진다(작품 127, 12번 현악 사중주의 아다지오 악장, 13번 현악 사중주의 안단테 악장, 14번 현악 사중주의 4악장, 작품 132, 15번 현악 사중주의 아다지오 악장); 그리고, 이들의 깊은 애상은 그 어스레함으로부터 천천히, 주저하듯이 솟아 올려 지는데, 이는 오로지 '대 변주곡' 형식의 무한한 표현력을 가진 수단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 이 곡들은, 눈썹에 맺혀 떨리는 고요한 눈물 속에서만 알 수 있는, 말하자면 뭐라 말할 수 없는 슬픔을 표현하고 성화시킨다. 우리는 작곡가가 그 생애의 마지막 시기에 어떤 고난을 겪었는 지를 기억해야 한다.

 

삼가고 침묵하는 그의 타고난 성격은 그의 귓병으로 인해 더욱 강화되었으며, 그의 고통과 민감한 성격, 마음의 고뇌, 그리고 사랑하면서도 결코 사랑받지 못하는 것, 이 모든 것들이 그의 내부에 거의 순수한 법열의 경지까지 닿은 내면의 삶을 길러 내는 것을 거들었다. 그는 자신의 생애의 이른 시기에 견고한 성채의 울타리 내부에 자신을 가두었으며, 거기서 그는 환상과 추억들과 회한 속에서 삶을 영위하였다. 첫 사랑의 쓰디씀을 겪은 뒤에 사랑을 더 이상 믿지 않고, 그의 영웅이 독재자가 되자 인류를 위한 자유의 복음을 믿기를 그만두면서, 그는 자신이 참여하지 못하거나 혹은 참여하려 하지 않은 현실을 대체할 정신의 세계를 쌓아 올렸다. 그리고 이 내면의 세상에 포함된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하여, 그는 그 가장 작은 굴절조차도 음악사에서 결코 실현된 적이 없는 표현력을 가지는 새로운 소리의 언어를 창조해내었으며, 이에 대한 예외라면 아마도 모짜르트의 극예술에서나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 성장의 다양한 단계들을 통하여 하나의 주제의 최종적인 형태를 쫓는 이 끝없는 추구 속에서 - 그리고 이 추구는 전개부와 작품의 세부에까지 이어진다- , 생각컨대, 드비시가 본 것처럼, 베에토벤의 음악을 들으면서 순수한 음악적 탐구의 충동에 의해서만 인도되는 음악가를 반드시 떠올려야 할 필요는 없는 듯 하다. 그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그 주된 윤곽을 보다 정확하게 드러내려는 열망이 하나의 작품에서 기술적인 세세한 부분까지 완벽을 이루려는 갈구로 나타난 한 예술가의 노력이다.

 

'순수한 음악적 탐구'라는 개념은 아마도, 정교한 음악적 형식이 복잡한 심리적 의미와 밀접히 맺어져 있는 후기 사중주들의 예술이 종종 표면적으로는 인간적인 요소가 결여된 듯이 보이기 때문에 나타났을 것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인간적인 요소는 그 안에서 맥박치고 있다. 우리는 형식과 의미를 구분하는 것이 더 이상 불가능한 곳에 도달한다. 그것은 그 안에 다정스러움과 모든 감각의 흔적이 정신의 표현 속에 잠겨 있는 예술이며, 그 안에 고행자의 성격을 가지면서 초인적인 어떤 것이 존재하는 예술이며, 음악의 진화의 사슬을 끊는 유례 없는 예술이다. 스스로 다시 짖쳐 드는 한 영혼의 고뇌 안에서 생각한다면, 이 비길 데 없는 업적은 아마도 성스러운 행복이 가져다 주는 저 생명의 숨결을 놓칠 것이다.. 왜냐하면, 행복은 심지어는 고통을 통해서 이룰 수 있는 것보다 자기 인식을 훨씬 더 충실하고 보다 더 완전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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