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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humann

슈만의 생애 : 1. 슈만의 어린 시절

by Amadeus 2008. 10. 21.

 

 

슈만의 생애 : 어린 시절

슈만은 서적상이자 출판가이고 작가인 아우구스트 슈만(August Schumann : 1773년 탄생, 색슨 계보의 서기의 아들)과 요한나 크리스티아나(Johanna Christiana : 1771년 탄생, 슈나벨[Schnabel]이라 불리는 외과 의사의 딸) 사이의 다섯번째이자 막내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1795년에 결혼하여 11년 이상을 짜이츠(Zeitz)에서 살다가 1807년에 쯔비카우(Zwickau)로 이사하여 거기서 출판사를 설립하였다. 슈만이 태어나던 해에 그의 아버지는 신경쇠약에 걸렸으며, 이는 남은 여생동안 내내 그를 괴롭혔다. 1816년에 슈만이 그 지방의 사립학교에 다니기 시작함으로써 슈만의 교육은 시작되었으며, 거기서 그가 특별한 재능을 보여준 것은 없었다. 비슷한 시기에 성 마리아 성당의 오르가니스트인 쿤츠(J. G. Kuntzsch : 1775 ~ 1885)로부터 첫번째 피아노 레슨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데, 쿤츠는 좀 학자연하는 성격의 그리 능력이 대단치 않은 음악가였다. 1819년 8월에 슈만은 모셸레스(Moscheles)가 칼스바트(Karlsbad)에서 연주하는 것을 들었고, 이는 슈만에게 결코 지워질 수 없는 인상을 남겼다. 슈만의 초기 출판 작품들을 보면 피아노를 다루는 방식에서 모셸레스의 스타일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같은 해이거나 혹은 그 전해에 이 소년은 라이프찌히(Leipzig)에서 요술피리(Die Zauberfloete)를 통해 처음 오페라를 감상할 기회를 가졌다. 1821년 11월 6일, 슈만은 쿤츠가 프리드리히 슈나이더(Friedrich Schneider)의 오라토리오 '세상의 기쁨(Weltgricht)'을 성 마리 성당에서 연주할 때 피아노를 맡아서 연주에 참여하였다. 그리고는 1822년 1월에 시편 cl을 가사로 하여 소프라노, 알토, 피아노와 관현악을 위한, 그가 백지에 직접 오선지를 그린 13줄의 26페이지에 이르는 작품을 작곡하여 'Oeuv. I'라고 기입하였다(Oeuv는 Opus에 해당하는 불어 : 역주). 이는 당시에 놀랄 정도로 인기가 있었던 슈나이더의 오라토리오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며, 슈만의 작품은 그의 동료 학생들과 다른 어린 친구들에 의해 연주되었다. 같은 해에 이 친구들을 위하여 '대편성 오케스트라를 위한 서곡과 합창(Ouverture et Chor fuers grosse Orchester)' Oeuv.1/No.3을 작곡하였는데, 이는 9페이지의 서곡과 '아름다운 아침은 얼마나 매혹적인가(Wie reizend ist der schoene Morgen)라는 가사로 시작되는 간략한 합창이 딸린 곡이다. 이 작품은 그가 입수하게 된 Paer의 작품 아킬레스의 성악부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 명백하다. 1820년 부활절에 그는 쯔비카우의 Lyceum에 입학하였으며, 거기서 8년을 머물렀다. 거기서 리케움의 교장에 의해 가끔 열린 '여흥의 저녁'에 그가 공개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기록을 통해서 그가 피아니스트로서 괄목할만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와 동시에 이 소년은 피아니스트로서의 자질을 능가하진 못할지라도 그에 필적하는 자질을 문학 분야에서 보여주었다. 리케움의 정규수업을 받는 짬짬에 그는 그의 아버지의 서점과 도서관을 통해 이것 저것 가리지 않고 책을 읽음으로써 폭넓은 지식을 스스로 쌓아 나갔다. 이는 그의 아버지에 의해서 더욱 고취가 되었는데, 슈만의 아버지는 슈만이 13살 되던 해에 그가 발행한 '모든 민족과 시대의 가장 유명한 사람들의 초상화집(Bildergalirie der beruehmtesten Menschen aller Voelker und Zeiten)'에 짧은 원고들을 싣도록 허락하였다. 대략 비슷한 시기에 이 소년은 산문들과 시 등의 모음집을 엮었다. 여기에 실린 시의 일부는 자작이고, 5막으로 이루어진 비극 '영혼(Der Geist)'의 한 장면 포함하며, 또한 슈베르트의 '음악 미학에 대한 사유(Ideen zu einer Aesthetik der Tonkunst)'에 실린 한 구절도 포함한다. 이 문집의 제목은 '황금의 목초지에 핀 잎과 꽃들. Skuelander라 불리는 로베르트 슈만에 의해 수집되고 묶이다. 1823년(11월과 12월)'이다. 1825년에 시작되어서 1828년까지 이어진 두번째 책인 '물더(Mulde) 강가의 로베르트의 펜에서 나온 잡문집(Allerley aus der Feder Roberts an der Mulde) - 쯔비카우는 물더 강가에 자리하고 있다 - 주로 자신의 문장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는 라틴 시를 독일 운문으로 번역하는 그의 학교 과제를 반영한다. 그가 호라티우스(Horace[영], 로마의 서정시인. Quintus Horatius Flaccus, 65 - 8, BC.)의 송가들 가운데 선별하여 번역한 것을 책으로 묶었는데, 이는 아직도 존재한다. 슈만의 '단체'에 대한 애정은 1825년부터 나타나는데, 그 해 그는 두 개의 학생 단체를 만드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하나는 비밀 단체인 '학생결사(Schuelerverbindung : 5월 19일 결성)'로서 펜싱 기량의 연마가 목적이었으며 정치성은 전혀 없었다. 다른 하나는 문학적인 '학생회(Schuelerverein : 12월 12일 첫 모임)'로서 독일 문학의 연구가 그 목적이었다. 슈만이 또 다른 극문학 저작을 시작한 것은 아마도 이 학생회 시기 즈음이었을 것이다. 이들은 코리올란(Coriolan)에 관한 에세이와 코미디물인 '레온하르트와 만텔리에(Leonhard und Mantellier), 그리고 '공포극'이라고 이야기되는 '두 몬탈티와 란�되르퍼 형제들(Die beiden Montalti und die Brueder Lanzendoerfer)'이다.

이 때 슈만의 아버지는 슈만을 베버(Weber)에게 보내서 작곡 수업을 받도록 할 계획을 세웠으나 베버의 죽음으로 그 계획은 수포가 되고, 베버가 세상을 떠난 지 한달 정도 지났을 무렵에 아우구스트 슈만 자신도 세상을 떠났다(1826년 8월 10일). 그 조금 전에는 슈만의 유일한 여동생이자 육체적, 정신적으로 장애가 있었던 19살난 에밀리(Emilie)가 세상을 떴다. 거기에다 나니 파치(Nanni Patsch)와 리디 헴펠(Liddy Hempel)이라고 그 이름이 기록되어 전해지는 두 소녀에 대한 풋사랑은 슈만의 정서적 경험을 더욱 확장시켰다. 이에 관한 이야기는 그의 자전적인 소설인 '6월의 밤과 7월의 낮(Juniusabende und Julitage)'에 두드러지게 묘사되었으며, 그 2년 뒤에 슈만은 이를 '나의 첫번째 작품이자 나의 가장 진실되고 훌륭한 작품; 내가 그것을 쓰면서 얼마나 울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얼마나 행복하였던가'라고 표현하였다. 나니와 리디는 콜디츠(Colditz)의 의사의 음악적인 아내이며 젊고 지성을 갖춘 아녜스 카루스(Agnes Carus)로부터의 사랑때문에 슈만의 사랑으로부터 곧 완전히는 아니지만 부분적으로 뒷전에 나앉고 만다. 1827년이 끝나갈 무렵, 콜디츠에서 카루스 집안을 방문한 뒤에 그는 한 술 더 떠서 라이프찌히(가장 가까웠던 학창시절의 친구가 대학에 다니고 있었다), 드레스덴, 프라하, 그리고 테플리체(Teplice : 거기서 그는 헴펠과 다시 만났다가 헤어졌다)까지 여행하였다. 이 휴일 동안에 그가 쓴 편지에들에는 샴페인을 마신 일이 자주 언급되는데, 이 버릇은 몇 년이 지난 후에야 떨쳐 버리게 된다. 1827년에 생긴 또 하나의 버릇은 일기장, 혹은 비망록을 챙기는 것이었다; 그가 쓴 가장 최초의 일기는 "소년 시절의 나날들(Tages des Juenglinglebens)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1827년 여름부터는 또한 장 폴(Jean Paul)에 대한 그의 문학적 열정이 시작되는데, 이는 이미 만개하고 있던 그의 산문 양식에 지배적인 영향을 끼쳤으며, 또한 슈베르트에 대한 음악적 열정이 싹튼 시기도 이 즈음이다. 그의 메모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악기에 붙어 앉아서 매일 즉흥 연주 연습을 하다. 악기 없이 작곡하려는 시도들을 해 보다....F 단조의 피아노 협주곡을 시작하다.' 1827년에 작곡된 4곡의 가곡은 아직 남아 있다. 2월에 작곡되어서 6월에 개작된 Verwandlung(변용, E. Schulze의 시), Lied fuer xxx(xxx를 위한 노래 : 자신의 시 '요술을 부리는 요정처럼 가벼운[Leicht wie gaukelnde Sylphiden]), 동경(Sehnsucht, 역시 자신의 시), 그리고 바이런(Byron)의 시 '나는 그대가 우는 것을 보았네(I saw thee weep, 7월 작곡)이 그것이다. 이 곡들은 의심할 여지 없이 가수였던 카루스(Carus) 여사를 위해 작곡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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