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ppenwolf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만남
Amadeus
2008. 10. 22. 09:12
오랜만에 사무실에서 여유로운 마음으로
차를 한 잔 내어 마십니다.
차 빛깔은 청자 다기에 유난히 어울리는 듯 합니다.
오는 듯 마는 듯 내리는 비에 가을이 익어가고
나는 아무 생각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 합니다..어?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다?
차를 한 잔 내어 마십니다.
차 빛깔은 청자 다기에 유난히 어울리는 듯 합니다.
오는 듯 마는 듯 내리는 비에 가을이 익어가고
나는 아무 생각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 합니다..어?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다?
오랜만에 분위기 잡는 김에 음악도 하나 틀어 봅니다.
볼프의 미뇽의 노래들을 듣고 싶었는데...
어느 샌가 시디를 집에 가지고 간 모양이네요.
비오티의 가단조 협주곡을 듣습니다.
언젠가 네스카페의 선전에서 배경음악으로 나오던 곡,
그 뒤로는 고전 음악을 꼬진 음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해 접대용으로 종종 사용되었던 곡입니다.
자연스럽게 흘러 나오는 기품만으로 따진다면
이보다 더 나은 바이올린 협주곡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원래 이정도 과장은 누구나 하는 겁니다^^)
어제는 KBS에 팩스를 보냈습니다.
24일날 KBS 홀에서 열리는 국악 한마당에 일가족
여섯명분의 입장권을 보내 달라고 신청했지요.
"야, 있쟎아, 임동진 알지? 그사람이 나와 해설한대~~!"
국악과는 거리가 먼 조카들을 요렇게 꼬셔 볼 작정입니다.
옛날에 청소년 음악회에서 최할리가 해설하는
피터와 늑대를 보고서 좋아들 하던 녀석들 모습이 떠오릅니다.
이런 자리에서 "어, 오셨네요?" 하면서 만나는 기쁨 또한
솔챦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특히나 수제천을 실연으로 듣고 싶었는데,
이번 자리에 대한 기대가 큽니다.
모든 풀과 나무들이 잎새를 떨구며 대지에 깊이 뻗은
그 뿌리들을 움츠리기 시작하는 계절입니다.
그 땅 위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은 최소한의
생존을 위해 뿌리내릴 자리조차도 박탈당하는
아픈 현실들이 수없이 보이는 아픈 계절이기도 합니다.
다시 한 번 Dignity under pressure라는 말을 떠올려 봅니다.
몇 안되는 뿌리를 허공에 띄워 놓고
토양과는 비교할 수 없이 희박한 공기 속에서
가쁜 숨을 몰아 쉬며 무언가를 잡으려는 풍란과도 같이,
우리네 삶의 뿌리도 그렇게 희박한 자리에서 허공을 움킵니다.
누가 압니까, 그렇게 헛된 듯이 허공을 움키는 손길에
묻어나는 미세한 무언가가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전부일 지를.
굳건한 대지에 뿌리박은 억센 뿌리가
우리의 동물적 생존을 지탱해 줄 때,
그 생존이 삶이 되도록 하는 것은 바로 그 무언가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가을 바람이 그리 시리게 닿아 오지만은 않는 것은
그렇게 희박한 공기 속에서도
부대끼고 얽히는 뿌리들을 만나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이곳은 음악이라는 공기 가운데서도 더욱 희박한
고전음악이라는 진공(^^)에서 서로 얽히는 자리라고 하면
이것도 너무 심한 비유가 될까요?
풍란이 모든 뿌리를 땅 속에 박고 있어도
그렇게 독특하고 짙은 향기를 뿜을까요?
그 답은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조심스럽게,
그 뿌리의 효율성을 말도 안되게 낭비하면서
공기처럼 희박한 삶의 자리 어딘가로
뻗어간 뿌리가 없다면, 그 사람의 향기 또한 흙 속에
묻혀 버릴 것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1998. 10.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