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추어의 음악 감상
지금으로부터 약 이십년 쯤 전인가보다. 고전 음악을 듣기 시작한 지 3년, 나는 거의 음악에 미쳐 있었다. 친구들은 나보고 전공이 음악이라고 놀려대었다. 시간만 나면 음대 시청각실에 가선 음악을 듣고, 음대 도서관에서 필요한 책을 빌려선 복사를 하고 또 읽었다. 그러면서 나는 그 애매한 경계, 감상자와 비평가 사이의 숲을 방황하고 있었다.
웬지 음악을 들으면 그 연주에 대해서 평을 해야만 할 것 같았고, 그 평의 수준은 마치 전문 음악 비평가나 된 듯 뭔가 수준이 있는 그런 것이어야만 할 것 같았다. 음악회를 가면 음악을 듣기보다는 오히려 그 연주의 결함을 잡아 내기에 바빴다. 다른 사람들이 '그 연주에서는 이런 이런 점이 부족했어'라고 말할 때, 내가 그에 상응하는 평가를 내리지 못하면 뭔가 수준이 모자라는 것 같았고, 뭔가 제대로 듣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당연히 음악회는 피곤했고, 감동과는 거리가 먼 감상이 이어졌다.
그 무렵 나는 봉천동의 어느 허름한 자취집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창문이 바로 골목길에 붙어 있어서 가뜩이나 신경이 예민한 나는 밤마다 잠이 드는 데 어려움을 겪곤 했다. 그래서 생각해 낸 방법이 수면제 음악들을 사용하여 다른 잡소리들을 중화시키는 것이었다. 가급적이면 길고, 또 이해가 안되는, 잠 안오는 음악들을 적당한 크기로 틀어놓고선, 그 음악을 이해하려고 집중하여 노력하면 나는 어느새 잠이 들곤 했다.
베에토벤의 장엄 미사, 현악 사중주들 등등 온갖 좋다는 음악들은 모두 수면제로 사용되었다. 90분 짜리 테잎에 녹음을 하여 듣다 보면 한 곡이 약 보름 정도는 버텨 주었다. 자꾸 듣다 보니 조금씩 이해가 되기 시작하고, 그러면서 조금씩 잠드는 시간이 늦어지고, 끝내는 테잎을 뒤집거나 갈아끼워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 때 쯤이면 수면제는 더 이상 수면제가 아니라 각성제로 변질되어 있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슈만이 '장 파울의 네권짜리 장편소설처럼 천국적으로 길다'라고 평한 슈베르트의 9번 교향곡이었다.
질풍 노도의 시기에, 베에토벤이 삶의 우상이었던 그 시기에, 슈베르트의 그 따뜻한 시정과 낭만성은 내게 이해되기 어려운 그 무엇이었다. 교향곡은 무조건 투쟁적이어야 하고, 격정과 열광의 회오리를 동반한 폭풍우가 되어야만 했다. 음악의 진행은 완전히 기억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즉 곡의 진행에 충분히 익숙해 졌음에도 불구하고, 도무지 이 곡을 왜 좋다고 하는 지 이해가 안되는 시간들이 이어졌다. 그 무렵의 나는 완전히 베에토벤의 점령지였다.
그러던 어느 날, 서울 시향이 문제의 그 곡을 연주한다는 것을 알았다. 뭐, 이해가 되든 안되든, 이 대단한 음악 비평가는 그런 연주회는 반드시 가 보아야만 했다. 더구나 라흐마니노프의 그 유명한 2번 협주곡이 함께 연주되는 프로그램이었다. 날이면 날마다 찾아 오는 프로그램은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그 날은 모든 것이 꼬였다. 목요일이었고, 리포트가 있었다. 목요일이라는 것은 두가지 의미가 있었다. 하나는 수업이 다섯 시에 끝난다는 것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체육 수업이 있다는 것이었다.
체육 시간은 두시간 짜리였고, 종목은 축구였다. 월드컵 축구때문에 중간 고사를 포기한 적도 있는 내가 그 시간을 대충 보낼 리가 있겠는가. 두 시간을 죽어라고 뛰어 다녔다. 리포트를 쓰느라고 잠도 충분히 자지 못하고, 축구를 한다고 초죽음이 되도록 뛰어 다니고, 더군다나 시간에 늦어 헐레벌떡 도착한 세종 문화회관에선 벌써 라흐마니노프의 2악장이 연주되고 있었다. 악장 중간에 들어가면서 내심 빠른 삼악장이고 시간도 얼마 길지 않으니 적어도 졸진 않을 것이라 기대하며 앉았건만, 앉자 마자 나는 어린 아이 손가락에 뒷발 두개를 잡힌 방아깨비가 되고 말았다. 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졸리움이여.
협주곡이 끝나고 인터미션이 되었다. 나는 대책이 서지 않았다. 안그래도 수면제용 음악이 아니던가. 게다가 천국적으로 길다. 나는 용단을 내려야만 했다. 왼쪽에는 초등학교 6학년쯤 되어보이는 어린 아이가 엄마와 함께 앉았고, 오른 쪽엔 내 나이 또래 정도 되는 아가씨들이 둘 앉았다. 나는 오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음악회에 와서 조는 사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뭐, 피곤하다 보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이 얼마나 고마운 반응인가. 나는 면죄부라도 받은 양 의자에 몸을 깊숙히 파묻고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떨어뜨렸다. 하지만, 그 면죄부는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그 말을 한 당사자의 몫이었다.
호른의 서주가 시작되면서, 그 편안하고 따뜻하며, 마치 영원히 이어질 듯한 서주가 이어지면서, 전혀 상상도 기대도 하지 못했던 일들이 발생하기 시작하였다. 소리 하나 하나가 이어지면서 그와 동시에 내 몸의 신경 세포들이 함께 하나씩 화들짝 깨어나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서주가 끝나갈 때쯤엔 거의 모든 세포들이 일어나 아우성을 치고 있었고, 마치 열에 들뜬 것 같은 시간들이 음악과 함께 흘러갔다. 내가 나비인가, 아니면 나비가 나인가? 그 긴 시간 동안을 나는 전혀 내 심장을 제어하지 못했다.
그렇게 할 필요도 물론 없었다. 그 두근거림, 그 설레임, 피날레가 가까와 오는 것이 왜 그리도 안타까웠을까. 나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 와 있는 것 같았다. 어느 한 순간 고개를 돌려 보니, 내 양 쪽의 네 사람은 모두 또 다른 의미의 삼매경을 헤매고 있었다. 그들은 내게 면죄부를 준 것으로 자신들이 이미 면죄부를 받았다는 것을 알고나 있었을까.
나는 아직도 정재동씨의 지휘로 이루어진 그 날 음악회의 연주가 어땠는 지 모른다.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푸르트뱅글러의 연주와 비교하여 어떤 점이 좋았고 어떤 점이 떨어졌는 지 알지 못한다. 도대체 그게 무슨 상관인가? 나는 그 날 새로운 세계를 다녀 왔고, 그 세계로 통하는 문은 그 날 내게 그 신비로운 열쇠를 건네주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내 생명의 저 깊은 곳으로 이어지는 통로였다. 음악이란 것이 왜 위대한 것인지, 감동이란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은 어디까지 닿을 수 있는 것인지,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알려 주었다. 내가 지금껏 들어왔던 그 숱한 음악들 가운데 그보다 더 감동적이고 그보다 더 가슴 벅찬 연주회는 없었다. 그 이상 더 무엇이 필요할까. 모든 선입관, 모든 버거운 겉멋을 벗어 던지고 오로지 음악이 들리는 대로 귀와 마음을 열어 놓은 덕분에 받게 된, 내 삶의 더 없이 축복된 순간이었다.
그 날 이후, 나는 그 어줍잖고 불편했던, 그 메마른 경계에 작별을 고했다. 비평가여, 안녕. 내 가슴은 음악으로 채우기에도 너무 비좁아. 다만 감동과 공감으로 충만한 시간들이 이어지길.
그리고는 되도록이면 음악 자체에만 집중하기 시작하였다. 사실은 그것이 전부다. 음악을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 이것은 참으로 간단하게 들리는 말이지만, 그것이 요구하는 바는 얼마나 크고 많은 것인가. 가장 간단하게는 곡의 진행과 주 선율 정도부터, 깊이는 조성과 화성의 변화 등등까지. 그 모든 것을 제대로 알기 전에, 내가 어떻게 어떤 음악을 - 그 음악이 아무리 간단한 곡일 지라도 - 제대로 알았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인가.
내가 안다고, 이해한다고 하는 것은 그 가장 드러난 외피, 제대로 음악 교육을 받지 못한 둔감한 귀에 피상적으로 들려오는 소리들일 뿐이다. 다행히 자상한 해설서라도 있으면 그보다 조금 더 알 수가 있다. 하지만 아직 멀었다. 영원히 멀리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행스러운 점은, 곡의 내적 구조라는 것은 결국은 최종적으로 귀에 들리는 소리, 그들이 귀를 타고 마음에 부리는 요술을 위한 것이라는 것이다.
다채롭고 경묘한 전조와 기발한 화성으로 작곡가가 오선지를 채우는 것은 듣는 사람들이 그 구조를 알아주기를 바라서가 아니라, 그로 인해 듣는 사람들이 '어떤 것을 느끼도록' 하기 위함이다. 슈베르트가 겨울나그네의 '거리의 악사'에서 바란 것은, 사람들이 그 곡을 듣고 3도가 빠진 화음을 사용한 것을 알아주길 바란 것이 아니라, 그 공허한 울림을 통해서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한 젊은이의 절망과 허무를 느끼길 바란 것이 아니던가.
이런 생각을 하면, 음악 앞에서, 연주를 들으며, 그리고 사람들과 함께 할 때 - 그것이 온라인이던 오프라인이던 - 조금 더 겸손해지고 조금 더 조심스러워진다. 나보다 조금 더 나은 귀와 마음을 가진 이들의 의견을 좀더 겸허히 수용하려 하고, 행여 그들의 생각이 나의 생각과 다를 때엔 먼저 자신을 돌아보며 나의 감성이나 생각에, 내 이해에 부족함이 없는 지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아무리 미세한 소리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그들이 내 마음에 그려 가는자욱을 따라가려 애를 쓰게 된다.
그렇게 따라가다 보면 어느 새 인적 없는 호젓한 산길을 접어들어서는,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아름드리 숲을 만나기도 하고, 어디서도 본 적이 없는 아름다운 꽃의 황홀한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아득한 산정에 서서 끝없이 펼쳐진 산봉들을 굽어보기도 하고, 그지없이 경건한 천상의 축복이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시간도 만난다. 그리고, 그 숲도, 산도, 꽃도, 축복도, 음악을 따라 걸으며 만나는 그 모든 아름답고 장엄한 모습들 모두가, 결국은 내 자신 속에 감추어져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가장 아름답고 고결한, 너무 아름답고 고결하기 때문에 찰나를 그냥 스치듯이 스러져버리는 그 덧없음으로 인해 가슴 아릴 수 밖에 없는 저 고독하고 아픈 저 깊은 곳, 오늘도 음악은 내 가슴 속 미지의 세계로 여행을 권하며 손을 내민다.
2001년 12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