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humann

슈만의 가곡 - Grove 음악 대백과 사전

Amadeus 2008. 10. 21. 14:18

 

 

슈만의 가곡들

슈만의 후기 작품들은 1831년부터 1839년까지의 피아노 음악과 관련을 지어서 생각하거나 혹은 대비시켜 볼 때에만 제대로 조망했다고 할 수 있다. 브렌델(Alfred Brendel, 피아니스트 : 역주)이 말한 것처럼, 1840년에 쏟아져 나온 위대한 노래들은 '피아노를 위한 묘사적 소품(character-piece : 보통 '성격 소품'이라고 번역하나 이는 원래의 의미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다고 생각되어 용어를 바꾸었음, 역주)의 연장'이다. 그러나 가곡들은 다른 차원의 부가적인 색채를 가지는 피아노 작품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피아노 작품들은 표현이 제한되고 절제되어 있으며 암시적인 반면 노래들은 모든 것을 그대로 드러낸다. 서정적인 요소들이 속박으로부터 해방되고, 그 정서적 내용은 정확하게 표현된다.

슈만 자신이 1840년 12월 31일 주칼말리오(Zuccalmaglio)에게 보낸 편지 속에서, '미르테 가곡집(Myrthen)은 분명 나의 내면의 음악적 작업들을 보다 깊이 들여다 볼 수 있게 해 준다'라고 이야기하였다. 게다가 그 시들은(슈만은 거의 항상 이들을 주의깊게 선택하였는데, 왜냐하면 이들은 자신의 내면의 무엇인가에 응답을 하기 때문이며, 일반적으로 수준 높은 문학적 감식안을 통해 선택되었다) 그의 음악적 사고를 위한 렌즈로서 작용하여, 그것을 날카롭게 하고, 집중하게 하며, 또한 그것을 형성하였다. 시와 음악 사이, 그리고 목소리와 피아노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는 일에서 슈만은 일반적으로 슈베르트와 볼프(Wolf)의 중간쯤에 서 있다.

Op.25의 No.1 인 헌정(Widmung)처럼 순수하게 서정적인 노래들이 다수 있는데, 여기서는 목소리는 노래하고 피아노는 '반주'를 한다. 이와 달리 Op.39의 No.7인 '어느 산 위에서(Auf einer Berg)'처럼 낭송적인 분위기로 부르는 노래들도 있다(비록 이 두 가지 특별한 경우들에서 대부분의 피아노 파트는 자체적 완결성을 가지며 선율선을 만들지만). 그러나 슈만이 작곡한 가장 전형적인 노래들은 Op.25 No.3의 호도나무(Der Nussbaum)에서처럼 단순한 방법을 통해서나, 혹은 Op.90의 No.3인 '만남과 헤어짐(Kommen und Scheiden)'에서처럼 보다 교묘한 방식을 통해서거나 성악 파트와 피아노가 멜로디를 공유하는 종류들이 있고, 이와는 좀 다른 종류의, 피아노 파트에서 비 선율적 요소들이 성악 파트를 완벽히 보완하여 전체적인 효과로 보아서는 같은 정도의 중요성을 가지는 노래들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의 예로는 가곡집 '시인의 사랑(Dichter Liebe, Op. 48)의 여섯번 째 곡인 '라인, 그 신성한 흐름 속에서(Im Rhein im heiligen Strome)라든가 Op.107의 No.3인 정원사(Der Gaertner) 등이 있다.

슈만의 노래들에서 나타나는 또 다른 공통적 특징은 종종 확대된 형태를 지니는 피아노의 후주부이다. 이는 특히 가곡집 '시인의 사랑'과 원래 이 가곡집의 일부로서 작곡되었던 곡들, 즉 Op.142의 No.4인 '나의 마차는 느리게 굴러간다(Mein Wagen rollet langsam)'같은 곡에서 특히 두드러지는데, 이렇게 보면 일반적으로 하이네(Heine)의 시를 사용한 가곡들에서 참으로 많이 드러나는 특징이다.

슈만이 하이네의 시를 다룰 때가 가장 행복한 때였다는 것은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하이네는 이중의, 혹은 베일에 싸인 의미를 구사하는 시인이었다. 그는 또한 아이헨도르프(Eichendorff)와 몇 안되는 그의 뫼리케(Moerike)의 시를 다룰 때도 또한 특별히 행복감을 느꼈다. 샤미소(Chamisso)와 케르너(Kerner)는 그를 보다 약한 영역으로 이끌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연가곡집 '여인의 사랑과 생애(Frauenliebe und -leben)'에서 샤미소가 시를 통해서 표현한 것보다 훨씬 뛰어난 것을 음악으로서 나타내었다. 괴테의 서정시들은 슈만으로부터 최상의 음악을 이끌어내는 데 별로 성공하지 못했으며, 쉴러(Schiller)는 거의 전부 무시하였다. 번즈(Robert Burns, 1759 ~ 96, 스코틀랜드의 시인)의 시를 독일어로 번역한 가사에 곡을 붙인 것은 무반주 합창곡에서보다 독창을 위한 곡들에서 더욱 성공적이었다.

그리고 그가 작곡한 독일풍의 민요와 유사한 곡들(quasi-Volkslieder)는 몇몇 매력적인 점들을 발견할 수 있으나(예를 들면 민요곡집[Volksliedchen] Op.51의 No.2와 무당벌레[Marienwuermchen] Op.79의 No.13), 달리 특징적이지는 않다. 서사적이거나 반 서사적인 발라드는 독창곡과 무반주 합창곡의 형태뿐만 아니라 멜로드라마(melodrama : 무반주 낭송)로서, 그리고 그의 생애가 끝나갈 무렵 독창자들과 합창, 그리고 관현악을 위한 곡들에 대한 실험으로 끊임 없이 슈만의 관심을 끌었다. 슈만에게는 항상 그렇듯이,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요소들이 줄어들면 줄어들수록 그에 따라 영감 또한 약화되었다.

슈만의 연가곡(Liederkreis) 창작은 정도는 다르지만 여하간 빈약한 끈으로 연결된 피아노 '연작'에 대한 슈만의 애정과 나란히 나아가는데, 간혹 이들 연가곡집의 각 노래들을 하나로 엮는 요소란 이들의 가사들이 단지 한 시인의 작품들로 구성되었다는 상황일 경우도 있으며, 하이네와 아이헨도르프의 경우가 그런 경우로서 실제로 Op.24와 Op.39는 그냥 하이네 가곡집, 아이헨도르프 가곡집으로 불린다. 또 다른 경우는 '여인의 사랑과 생애'에서처럼 하나의 이야기의 윤곽을 그려나가는 경우이다. 슈만은 후자의 경우에서 노래들을 네 성부에 분산시킴으로써 약간 더 극적인 효과를 만들어내려고 하였는데, 이들은 때로 이중창과 사중창으로 결합하기도 하였으며, 이들의 보기는 스페인 가사를 가이벨(Geibel)이 번역한 데 곡을 붙인 두 개의 노래극(Liederspiele) Op.74와 Op.138, 그리고 뤼케르트(Ruekert)의 사랑극(Minnespiel) Op.101 등을 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