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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주곡 III - 솔로 콘체르토의 기원

Amadeus 2008. 10. 21. 13:27

'솔로 콘체르토'의 기원에 대하여

 

일반적으로, 솔로 콘체르토의 창시자는 지우제페 토렐리(1651~1709)로 하고 있다. 사실 코렐리의 '작품 6'의 경우와 같이 토렐리의 6곡의 '솔로 콘체르토'가 포함되어 있는 그의 '작품 8'(그 중 6곡은 '콘체르토 그로소')은 1709년 볼로냐에서 출판되었으나, 출판 연대로서는 알비노니의 '바이올린 콘체르토'(1700)나 야키니의 '첼로 콘체르토'(1701)쪽이 확실히 빠르다. 그러나 그의 활동 연대나 '작품 8'의 중요성으로 보아, 토렐리를 솔로 콘체르토의 원조로 보는 것이 역시 타당할 것이다. (이 전에는 보논치니의 '바이올린 협주곡'이 1677년에 출판되었으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쳤으나, 오늘날에는 그것을 의심스럽다고 보고 있다.)

 

'콘체르토 그로소'의 경우와는 달리 솔로 콘체르토 발생의 원인에 대해서는 매우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다. 오페라의 서곡이나 교회 음악에 트럼펫 솔로가 많이 나타나고, 볼로냐 악파에서는 현악 반주의 '트럼펫 소나타'까지 나타난 사실, '바이올린 소나타'에 차차 카덴짜도 포함하는 기교적 패시지가 나타난 사실 등, '솔로 콘체르토' 발생의 예비 조건은 대개 1670년경까지에 모두 나왔다고 볼 수 있다. 또한 토렐리 자신이나 코렐리의 콘체르토 그로소가 있는 곳에서 하나의 바이올린이 매우 우월한 움직임을 보이는 것이나, 또 오페라의 기교적 아리아도 원인의 하나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토렐리의 '콘체르토'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첫째로 그것이 '소나타 다 키에자'나 '소나타 다 카메라'의 형식을 떨쳐버리고, 빠르게 - 느리게 - 빠르게의 3악장 형식을 확립한 사실이다(옛 형식에 의한 '솔로 콘체르토'도 동시에 실재는 하지만). 이 새로운 형식이 콘체르탄트한 양식에 잘 어울렸기 때문에, 비발디 등이 이어받아 발전시켜, 마침내 19세기의 황금 시대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 악장 배치가 콘체르토의 기본이 되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토렐리가 리토르텔로 형식을 시작한 것으로, 이 점은 조성감의 확립과도 관계가 있는데, 결국 급속 악장으로 투티의 부분이 오페라의 아리아의 리토르넬로 풍으로 회기하고, 그 중간에 솔로의 부분이 끼어서 출현하는 형식이다.

 

그 먼 기원은 16세기 베네치아 악파의 '칸쪼나'로, 부분이나 단락마다에 악기 편성을 변화시키는 데서 볼 수 있다. 바로크 시대의 음악적 소재라는 관점에서 솔로와 투티의 관계를 살펴보면, 우선 토렐리나 알비노니의경우에는 솔로는 투티(리토르넬로)와 관계없이 기교적인 피규레이션을 연주한다. 그러나 이 형식을 애호하고 발전시킨 비발디는 투티의 모티프를 솔로가 발전시키고, 또 어떤 경우에는 투티가 충분히 대립할 수 있는 음악적인 모티프를 솔로가 담당하는 부분도 보인다. 그러나 이 방법이 완전히 개화하는 것은 고전파의 소나타 형식에 이르러서이며, 이것은 하나의 예시 혹은 선구로 보면 충분할 것이다.

 

한 편 첼로 콘체르토는 앞서 이야기한 야키니나 다라바코, 트럼펫 콘체르토는 볼로냐의 페트리나 야키니, 오보는 토렐리나 알비노니를 그 창시자로 보고 있다. 또 쳄발로 독주의 협주곡은 바흐(사실은 그 작품 전체가 현악 협주곡의 편곡이지만), 오르간도 역시 바흐, 하프는 핸델을 각각 그 선구로 생각한다.

 

비발디는 '사계' 등에서 '솔로 콘체르토'를 표제음악으로 썼는데, 이것은 얼마 후에 텟살리니, 로카텔리 등이 뒤를 잇는다. 또 로카텔리의 이름이 나온 김에 덧붙이면, 그의 12곡으로 된 콘체르토(작품 3, 1733)는 극히 중요한 작품으로, 이 속에 카덴짜의 형태로 포함되어 있는 '24개의 카프리치오'는 파가니니의 동명의 작품의 선구가 되었다. 어쨌든, 비발디 - 로카텔리 - 타르티니를 거치며 바이올린의 기교는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